"산타야?" 매사에 심드렁한 박 경사님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박 경사님이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긴 하나, 비웃는 얼굴이 꽤 얄밉다. "크리스마스 선물 주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냐. 사건 조사하러 갔던 거 아니었어?" 슬슬 눈에 질리기 시작한 초록 리본이 달린 빨간 상자를 감싼 팔 한짝과, 어깨에 둘러멘 지저분한 검은 봉다리 입을 막은 ...
천사를 가두자. 모두가 볼 수 있게 유리병에 가둬버리자. 유리병, 루비, 루비의 눈물.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천사를 만들 수 있다. 눈밭을 가로지르는 발자국 행렬의 끝에 한 소녀가 있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이 눈 속을 헤집는다. 눈 속에 파묻힌 유리병을 찾은 순간, 소녀는 퉁퉁 불어난 눈두덩이를 힘겹게 밀어내며 눈꼬리를 휘었다. 유리병에 희미하게 비친 ...
"형사님. 여기서 뭐해요?" 앳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나를 내려다보던 소녀는 허리를 굽혀 한쪽 어깨를 붙잡았다. "범인 꼭 찾아야 해요?" "잃어버렸던 것들, 되찾았잖아요." 머리 위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소녀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져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얼굴을 쓸어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어깨를 ...
월요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간밤에는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꿈이 아닌 현실에서 눈을 떴다. 시계 초침이 한 칸씩 움직이는 걸 멍하니 지켜보다가 시선을 뒤로 옮겼다. 흩어진 노란 종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몸을 힘겹게 일으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꿈을 기록해놓았다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한 문장들이었다. 사건보고서라고 봐도 무방했다...
주황색 우산 하나가 물에 젖은 골목 위에 피어나 건물 테두리를 따라 일정한 속력으로 움직인다. 우산은 부지런히 직선을 그리며 움직이다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거리 위에 띄운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빨간 불이 들어온 신호등 사이를 가로지르며 주황색 우산을 비껴갔다. 홀로 멈춰 있던 주황색 우산은 초록색 신호로 바뀌고 나서야 움직이기...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 눈앞에는 마치 영화에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실로 추정되는 공간은 풀과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창문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뚫려 있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나무줄기를 새끼줄처럼 꼰 모양이 미끄럼틀처럼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나무줄기를 붙잡고...
불쾌감은 온몸에 퍼지기 전에 털어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단지 무형의 감정에 불과했던 것이 검고 끈적한 액체가 되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집어삼킨다. 완전히 씻기지 않는 불쾌감은 돌도 돌아 몸 한가운데 모여 쓰레기 섬을 만든다. 구태여 배를 갈라보지 않아도 그 찌꺼기들이 썩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구멍을 뚫어서 그 찌꺼기들을 긁어내고 싶어도 피부...
너무 가깝다. 낭떠러지 아래를 메우는 어둠이 너무 짙어서 눈에 다 담기지 않는다. 너는 내가 담지 못한 어둠 속에서 나를 증오해왔다. 죽음으로 생전의 의지를 증명하려는 자들이 어리석다고, 살아남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나를 경멸했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밝힌다. 탄생이 태초의 반항이었으니, 죽음은 최후의 반항...
보호시설 무연고자 실종아동등 프로파일링시스템 (수정․해제)자료 입력자료 작성관서: 낙화동부경찰서 계운파출서 작성일자: 2020.3.3 작성번호: xxxx 성별: 여 성명: 하지유 생년월일: 2004.02.29 시설구분: A. 아동복지시설 B. 노인복지시설 C. 장애인복지시설 D. 모.부자복지시설 E. 부랑인복지시설 F. 정신보건시설 G. 종교시설 Z. 기타...
to 현서 현서야 생일 축하해~~ 내가 직접 만든 팔찌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from 이민영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께-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미술시간에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했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버리실거면 왜 저를 낳으신거예요? 얼마 전에 복지관에 갓난아기가 들어왔어요. 이름은 지희서희예요. 손을 깨끗이 씻고 지...
2016.3.2 오늘 아침, 하지유는 교복을 입고 중학교 입학식에 갔다. 항상 머리를 묶고 학교에 가던 지유가 머리를 풀기 시작했다. 지유는 배치고사에서 무려 1등을 해서 무대 위로 올라가서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지유가 기뻐보여서 다행이다. 엊그제 일에 대해 아무리 물어봐도 한마디도 안해서 정말 걱정했는데 밝아보여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새학기를 맞아 ...
2013.12.08 오늘은 내 열번째 생일이다. 딸기, 체리, 키위, 포도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왠일로 아무도 체리를 안 먹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체리가 올라간 케이크 접시를 받았다. 빨갛고 동그란 체리가 예뻐서 먹기 아까웠다. 그래서 체리만 빼고 먹었다. 케이크를 다 먹으니까 선생님이 공책을 선물로 주셨다. 이번에는 구름이 그려진 하늘색 공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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